쪽지 플러스 구매
메시지 채널 리스트
삭제
젤리선물
  • 임의지정
  • 내 보유젤리 0

하트선물
  • 임의지정
  • 내 보유하트 0

메시지 상세
00:00

logo

방송국 스튜디오

내 마음에 두신 노래 즐겨찾기
since 2022-04-06
https://lordlovesyou.inlive.co.kr/studio/list
http://lordlovesyou.inlive.co.kr/live/listen.pls
마을 (LV.4) 소속회원 EXP 237,327
  • 100,000
  • 다음 레벨업까지 262,673exp 남음
  • 500,000

자유게시판

인라이브의 게시판 (커뮤니티 유저게시판/자료실, 방송국 게시판) 관리 지침
  • 한국 CCM의 역사

    38
    라이언하트🎼(@jenefsis83)
    2022-05-13 21:29:31


※원문출처: https://m.blog.naver.com/sangwoosky/22258971099

[한국 CCM의 역사]



한국에는 1960~70년대에 폭발적으로 일어난 부흥운동과 결부되어 미국으로부터
가스펠(Gospel, 복음성가)이 유입되기 시작했는데, 미국 기독교 음악의 무게 중심이
가스펠 쪽에서 점점 CCM으로 옮겨져가면서 한국에도 미국의 CCM이 번안되어 들어오게 되었다.



이와 함께 박종호, 송정미,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등 복음성가 가수들과, '주찬양 선교단'을 통해
한국 CCM을 선도했다고 평가 받는 최덕신 등의 활약으로 한국의 개신교 문화에 CCM이 자리를
잡아갔으며,

특히 1980년대 이후 선교 단체 등에서 본격적인 예배의 형식으로 받아들이면서 한국 개신교회
전반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한국 가톨릭에서도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 1970년대에 통기타로 반주하며 가요처럼 부르는
소위 '생활성가' 혹은 '복음성가'가 시작됐다.

이런 성가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가 오늘날에는 꽤 많은 생활성가 가수(혹은 찬양사도)들이
활동하게 되었다.

생활성가라는 용어로 불려온 이 성가를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소속인 성음악분과(현재 성음악소위원회로
격상)에서 「한국 천주교 성음악지침서」를 발간하면서 CCM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흔히 CCM이라고 하면 개신교 음악으로 많이들 인식하기 때문에 "가톨릭CCM"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극동방송 복음성가 경연대회]



80년대, 극동방송에서 복음성가 경연대회를 개최하게 되면서 CCM은 본격적으로 교회 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대회에서 입상한 팀들은 곧 음반을 내면서 활동을 시작했고, 교회 내에서 이들의 곡들은 상당히
빠르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 대회를 통하여 CCM 아티스트로 데뷔하게 된 사람들은

박종호, 최덕신(박종호의 곡 "내가 영으로"를 작곡해주었음), 송정미, "좋은 씨앗"의 이유정(송정미의
"오직 주만이"를 작곡해 주었음) 등 실질적으로 CCM 1세대라 불릴만한 사역자들이었다.



이들의 곡은 찬송가나 성가곡 일색의 교회, 특히 청년부와 학생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당시 청년부 집회나 학생부 주말 모임 등에서는 기타 하나를 들고 박수 치면서 찬양을 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이 때, 대회에 입상한 곡들이 찬양집에 수록되거나,

대회 입상자들이 음반 발매와 더불어 자신들의 곡을 피아노 악보나 단선으로 실은 악보집을 함께
발매하는 방식으로 교회 내에 이들의 곡이 상당히 빨리 퍼져나가고 정착되었다.

이는 미국에서 번안된 수입 찬양들을 국산 찬양으로 대체하는 효과도 있었다.



CCM의 전성기와 기획사의 출현



이렇게 CCM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조직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기획사가 출현하게 되었고, CCM 기획사에서는 음반을 제작하고, 녹음실을 운영하며, 각종 CCM 아티스트들의 활동(주로 교회 내의 찬양집회 초청) 스케줄을 관리하고 홍보하는 등의 활동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신인을 발굴하는 작업도 이어졌는데, 대표적인 기획사가 최인혁의 "다솔 기획", 김명식, 한국컨티넨탈싱어즈, 좋은씨앗 등의 소속된 "푸른 사람들", 그리고 소리엘과 옹기장이, 다윗과 요나단등이 주로 활동한 "예문기획" 등이 있었다.



CBS를 비롯한 기독교 방송에서도 CCM이 하나의 정규 컨텐츠가 되었다.

당시 CBS에서는 소리엘이 진행하는 "사랑의 노래, 평화의 노래"가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일반 라디오방송이지만, 한때 CCM 전문 방송으로 진행되던 꿈과 음악사이에도 유명했다.

특히 진행자인 최인혁의 입담과 성대모사, 일요일마다 진행하던 CCM 차트 등의 코너는 꽤 인기였다.

또한 CBS FM에서는 하덕규가 진행하는 "CCM 캠프"를 통하여 해외 CCM이 많이 소개되던 때였다.

즉, CCM계의 음캠 역할을 하던 방송이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CCM은 청년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한국 CCM계의 전성기라 할 때가 바로 이 때이다.


[워십의 출현과 CCM의 경과]


1990년대를 정점으로 전성기를 맞이하던 CCM은 2000년대에 들어서 전체 음반시장이 급속도로
냉각화되면서 동반 몰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우선 새롭게 창작된 곡으로 앨범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컴필레이션이나
현장 실황을 담은 앨범이 출현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CCM은 교회에서 소비되는 특성상 신곡보다는 오래된 곡이 더 큰 사랑을 받는다.

마치 트로트 가수가 한 곡으로 몇 년간 행사를 뛰는 것처럼, CCM은 한 곡이 10년, 혹은 20년 이상
교회에서 불린다는 것이 특징인데, 컴필레이션 앨범이 등장한다면 신곡이 담긴 "낯선" 음반보다는
"더 익숙한" 음반을 사게 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

당시 "트리니티"라는 이름의 컴필레이션이 상당한 화제가 되었는데, 이 음반이 등장하면서 우후죽순
격으로 컴필레이션 음반이 등장했고, CCM은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대의 트렌드가 "워십"으로 바뀌고 있던 것도 한몫 했다.

2000년, 예수전도단 화요모임 예배실황 앨범이 발매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이러한 예배앨범들이 등장하면서 가요와 비슷한 느낌의 CCM보다는 예배음악이
좀 더 선호되기 시작한 것이다.

워십곡은 특성상 특정한 가수만 부를 수가 없고, 예배팀의 편곡이 가수보다 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시장의 흐름이 워십 음악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해외도 비슷하다.

미국의 유명 아티스트인 Michael W. Smith도 2000년대 초중반부터 조금씩 예배 인도자로 포지션을
바꾸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그리고 호주의 유명한 찬양팀인 Hillsong Church의 곡이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 역시 이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등장했던 CCM 아티스트들의 색깔 문제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1세대 사역자들과 영성, 음반의 흐름 등 여러 부분에서 특별한 차별점을 보이지 못했고, 대중들은
"혹시 가수 되고 싶은데, 못해서 이쪽으로 나온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대중의 오해와 편견 역시 신인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데 한몫 했던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 특유의 문화가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행사에서 제법 여유있는 페이를 받을 수 있는 가수들과 달리 CCM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활동이
"사역"이라는 이름 하에 "헌신"을 강요받는다.

자연스레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어디서 감히 돈을 받아?"라는 소리를 듣게 되면서 교회에서는
소정의 사례비를 받지 못하거나, 사례를 받아도 이를 교회에 도로 헌금하는 경우가 잦다.

최근에는 조금씩 개선되는 분위기이지만, 아직도 교회에서는 CCM 아티스트들에게 인색하다.

당연히 이 활동을 생업으로 삼고 여기에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줄어들 수밖에.

최근 음반을 발매하는 CCM 아티스트들은 대개 교회에서 예배인도자로 활동하고 있거나,
혹은 "부목사"로 교구 등의 사역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다.

혹은 실용음악학원 강사나 혹은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직종을 병행하고있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2000년대 초까지 대세였던 신사도 운동등의 각종 부흥운동에 대한 이단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CCM도 교리적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여러가지 악재들이 겹쳤고, MP3로 대표되는 디지털 음원의 출현으로 CD는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되고 있다.

일반 가요계에서도 이러니 이보다 훨씬 시장이 적은 CCM은 더 말해 무엇하랴.

결국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음반시장의 불황은 CCM계에는 초대형 악재가 되었고,
위의 몇 가지 요소와 더불어 CCM은 침체되었다.



[저작권]



CCM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매우 희박하다.

저작권을 무시한 악보집도 쉽게 떠돌고 그 저작권을 찾기 위해 저작권을 주장하면 '주님을 찬양하는데
개인의 이익을 취하다니!'라는 투의 비난이나 '은혜롭게 이해해주세요' 같은 발언도 들을수 있다.



따라서 CCM을 전업으로 삼는 아티스트들은 이런 부실한 저작권 인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지역교회 등지에서 공연 요청을 받아도 비슷한 분위기 때문에 적정선의 페이를 받기 힘든
경우도 많다.

교회나 CCM 단체에서 주최하는 공연에 가보면 뒷자리에서 어김없이 CD를 판매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 CCM 아티스트들이 돈독이 올라 CD를 있는 대로 파는 것이 아니라 CCM 공연만
해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서다.



악기를 연주하는 CCM밴드의 경우에도 '봉사'로 모든 걸 때우려 한다거나 하는 등의 정당한 보수를
받기 힘든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 부업으로 상업음악의 세션 연주를 하며 공연을 뛰거나 하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는 음향, 영상, 자막, 조명을 담당하는 미디어 팀도 마찬가지.

그래도 미디어팀은 교회에 따라 달라서 소정의 수고비를 정기적으로 쥐어주는곳도 있기는 하다.

근데 그 수당도 100만원을 넘기기 힘들어서 사실상 부업정도지 전업으로 하기엔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신해철과 015B 혹은 그들을 모창한 그룹이 90년을 전후해 초기 앨범을 그대로 써서 CCM 앨범
(혹은 불법사용)을 낸 적이 있다.

분명히 그 가수/그룹 노래인데 들어보면 가사가 삼천포로 빠진다.

당시 저 가수들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종교노래를 틀 수 없는 일반고에서 방송부원이 스리슬쩍
끼워넣기 좋았다.



가장 최근의 흐름은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CEDM (Christan Electronic Dance Music)이
유행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 외국 CCM 번역라이센스는 휫셔 뮤직과 카피케어 코리아에서 취득 가능하다.

댓글 2

(0 / 1000자)

  • 29
    한나(@love0628)
    2022-05-14 02:19:57 댓글

    하트님 샬롬~
    긍금했었는데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 라이언하트🎼(@jenefsis83)
      2022-05-14 08:35:27

      한나 감사합니다^^

      댓글

LIVE


27

paul바울

@paul1972

운영 멤버 (3명)

  • 27
    • 국장
    • paul바울
  • 10
    • 부국장
    • 에스더💕
  • 29
    • CJ
    • 한나
  • 쪽지보내기
  • 로그방문

브라우저 크기를 조정해 주시거나
PC 환경에서 사용해 주세요.